Pitch ⚽/축구의 역사

세리에 A의 역사 1부 – 이탈리아 축구의 뿌리와 전설의 시작

동디니 2025. 7. 16.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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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가 이탈리아 땅에 처음 뿌리를 내리던 순간은, 단순한 스포츠 도입이 아니었습니다.
그건 곧 이탈리아 국민의 정서, 지역 정체성, 그리고 정치까지 관통하는 거대한 흐름의 시작이었죠.

⚽ 칼초(Calcio)의 기원과 축구의 전래

‘칼초(Calcio)’는 원래 16세기 피렌체에서 귀족들이 즐기던 공놀이를 뜻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현대 축구가 이탈리아에 들어온 것은 1890년대 말, 영국 상인과 선교사들이 항구도시 제노바를 통해 퍼뜨렸다고 전해집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이탈리아 최초의 축구클럽, 제노아 CFC였습니다.

🏛️ FIGC와 리그 시스템의 출범

1898년, 이탈리아 축구협회(FIGC)가 창설되며 공식적인 축구 행정 체계가 만들어졌습니다.
같은 해에 첫 전국대회가 열렸고, 이탈리아는 곧 축구에 푹 빠져들게 되죠.
당시에는 '프리마 디비시오네(Prima Divisione)'라는 이름으로 지역 예선을 거친 결선 리그 형태였습니다.

🏆 세리에 A의 탄생 (1929년)

이탈리아 축구는 1929년, 지금의 '세리에 A'로 전환되며 단일 리그제로 개편되었습니다.
그전까지는 지역리그 중심이었지만, 국민적 관심이 집중되자 국가 단위의 리그가 필요해졌던 것이죠.
초창기 명문 클럽이었던 유벤투스, 인테르, 밀란이 이 시기부터 본격적인 경쟁 구도를 형성하기 시작했습니다.

👑 유벤투스와 인테르, 밀란 – 전통의 삼강 체제

- 유벤투스: 1897년 창단. 아녤리 가문과 피아트의 후원을 받아 황금기를 열었죠.
- 인테르: 1908년 AC 밀란에서 분리되어 창단. '인터내셔널리즘'을 내세운 상징적인 팀입니다.
- AC 밀란: 1899년 창단, 영국계 창단 멤버들과 함께 유럽을 지향하던 초기 명문이었습니다.

🪖 무솔리니 정권과 축구의 정치화

1930년대 이탈리아는 베니토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정권 아래 있었고, 축구는 곧 정치 도구로 활용되기 시작합니다.
1934년과 1938년 월드컵을 연이어 우승하며, 무솔리니는 축구를 국민 통제 수단으로 삼았고, 세리에 A 역시 국가주의를 담아내는 수단이 되었습니다.
"승리는 우리 체제의 우월함을 증명한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죠.

"축구는 단순한 게임이 아니다. 이탈리아에서는 정체성이고, 역사다." – 익명의 이탈리아 축구 해설가

🌱 전설의 시작

초기 세리에 A는 단순한 리그가 아닌, 지역 간 자존심 싸움이자 계급 간 갈등, 나아가 국가의 이상을 반영한 무대였습니다.
그리고 이 무대에서 수많은 전설들이 탄생했죠. 남부 이탈리아를 대변했던 나폴리, 군사적 도시의 자부심이 담긴 토리노, 노동계급의 뿌리 깊은 축구사랑이 깃든 볼로냐까지.
세리에 A는 그렇게 이탈리아 전역을 하나로 묶는 축구의 ‘혈관’이 되어갔습니다.

📌 마치며

1부에서는 세리에 A가 어떻게 태동하고 이탈리아 사회에 뿌리내렸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2부에서는 마라도나, 반 바스텐, 플라티니 같은 세계적인 스타들이 불을 지핀 세리에 A의 ‘전성기 시절’을 이야기해볼 예정입니다.
축구가 단순한 스포츠 그 이상이던 시대, 그 치열하고도 낭만적인 풍경을 함께 그려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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